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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중요인물 (歷代.重要人物)
현재위치 원주김씨연원및계보 역대.중요인물 (歷代.重要人物)

김거공(金巨公)

원주김씨시조(原州金氏始祖) 초명(初名)은 자표(子彪) 봉호(封號)는 원성백(原城伯)이다. 고려 숙종(肅宗) 원년(1096.병자년) 3월 3일 개성(開城)에서 간의대부(諫議大夫) 김주(金疇)의 6남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한림학사(翰林學士) 김미연(金亹然)이 조부이며 신라(新羅) 마지막 임금이신 경순왕(敬順王)의 여덟 번째 아들 일선군(一善君) 김추(金錘)가 7대조가 된다천품과 자질이 영명(英明)하고 시서(詩書)에 능통(能通)하였으며 천문지리(天文地理)에 통달하여 서이(胥吏)에 선발되어 출사(出仕)하였다. 그후 이부시랑중강(吏部侍郎中講) 학사.겸,합문(學士.兼.閤門) 좌우상시(左右常侍) 참지정사(參知政事) 등 요직을 차근 차근 역임한 끝에 인종(仁宗) 23년(1145)에는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가 되었다.의종(毅宗) 15년(1161)에 이부상서(吏部尙書)가 되었으며 호부상서(戶部尙書)를 거쳐 추밀원사(樞密院使) 판삼사사(判三司事)에 이르렀다 의종(毅宗)은 김거공(金巨公)의 수십년에 걸친 충절공훈(忠節功勳)을 기리어 원성(原城:원주)을 식읍(食邑)으로 하사(下賜)하고 원성백(原城伯)에 봉(封)하였다. 이로써 김거공(金巨公)의 후손들이 원주(原州)를 본관(本貫)으로 삼았다

김윤간(金允侃) 일휘(一諱) 산윤(山允) 호(號) 귀산(龜山) 참지정사(參知政事)문하시중(門下侍中)
김시보(金時寶) 호(號) 청암(淸巖) 추밀원밀직사사(樞密院密直司事) 시중대언(侍中代言)
김양신(金良信) 호(號) 남송(南松) 정당문학(政堂文學)
김정신(金鼎臣) 호(號) 청온(淸溫) 영동정이정언(令同正以正言)
김경류(金景流) 호(號) 광남(光南) 대선(大禪)
김용주(金用珠) 호(號) 백수(伯壽) 동지사(同知事)
김   자(金   資) 호(號) 창보(昌甫) 대호군(大護軍) 도첨의사사(都僉議使司)
김   의(金   義) 호(號) 중암(仲巖) 선주수령(宣州守令)
김   진(金   瑨) 호(號) 일도(一道) 병부상서(兵部尙書)
김   해(金   晐) 호(號) 영암(寧巖) 시호(諡號) 원도공(元度公) 이부상서(吏部尙書)
김득우(金得雨) 문정공파조(文貞公派祖) 자(字)는 원백(元伯) 호(號)는 소명(素明) 시호(諡號)는 문정(文貞)이니 만호(萬戶) 해(晐)의 아들이며 무민자(无悶子) 신군평(申君平)의 손서(孫壻)이자 신수(申璲)의 사위이다. 려말에 충주목사(忠州牧使) 예부상서(禮部尙書)를 지내시다 공(公)은 일찍이 정몽주(鄭夢周) 원천석(元天錫) 김자수(金自粹) 신덕린(申德隣) 김윤견(金允堅) 김중남(金仲南) 김지윤(金智允) 류종혜(劉從惠) 허기(許愭) 등 당대의 명류들과 교유(交遊)하며 신문정공(申文貞公)의 도학(道學)을 전수받고 많은 유학(儒學) 서적이 거듭 불에 타고난 나머지 온전치 못한 문운(文運)을 개척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고려의 사직(社稷)이 망하고 조선이 개국함에 벼슬을 그만두고 향리에 은둔(隱遁)하였다 조선조정이 고려의 명사(名士)들을 회유하려는 정책을 시도하여 여러차례 벼슬을 내리면서 새 조정에 출사하기를 종용하였으나 끝까지 나아가지 않고 망복지절(罔僕之節)을 지키었다.
김을신(金乙辛) 호(號) 청지(淸芝) 한성부윤(漢城府尹)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 공조판서(工曹判書)
김극신(金克辛) 호(號) 암오(庵吾) 이조판서(吏曹判書) 시호(諡號) 원성군(原城君)
김태신(金泰辛) 호(號) 문의(文義) 정사랑(正仕郞)
김연종(金連宗) 호(號) 수은(水銀) 제용감직장(濟用監直長)
김연지(金連枝) 대경공파조(戴敬公派祖) 자(字)는 간보(幹甫)이며 호(號)는 모암(模庵)이니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 을신(乙辛)의 아들이다. 1411년 16세에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고 1413년에 처음 벼슬하여 여러 번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형조도관정랑(刑曹都官正郎)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등을 지냈다. 1422년 세종(世宗)이 세자(世子)에게 정사(政事)를 대리(代理)시키고자 둔 첨사원(詹事院) 동첨사(同詹事)가 되어 출납(出納)을 주관하여 세종(世宗)의 신임을 받았다.1452년에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라 전라도관찰사(全羅道觀察使) 공조참판(工曹參判) 대사헌(大司憲) 한성부윤(漢城府尹)을 역임하고 다시 외직(外職)으로 나가 판한성부윤(判漢城府尹) 경기도(京畿道)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로서 선정(善政)을 폈다. 1467년에 중추부지사(中樞府知事)로 옮기고 봉조하(奉朝賀)가 되었다.1468년에 정헌대부(正憲大夫)에 오르고 1469년에 숭정대부(崇政大夫)를 가(加)하였는데 이에 이르러 졸(卒)하니 향년(享年)이 76세이다 대경(戴敬)이라고 시호(諡號)하니 예(禮)를 받아 허물이 없게 한 것을 대(戴)라 하고 일찍 일어나서 일에 공경한 것을 경(敬)이라 한다. 사람됨이 단아(端雅)하고 온량(溫良)하며 일에 임해서는 정련(精練)함으로 이르는 곳마다 이름과 공적(功績)이 있었다.
김연장(金連長) 제주판관(濟州判官)
김연복(金連復) 평산부사(平山府使)
김미수(金眉壽) 황해병사(黃海兵使)
김인수(金麟壽) 과천현감(果川縣監)
김팽수(金彭壽) 호(號) 용암(龍巖) 영해도호부사(寧海都護府使) 증병조참판(贈兵曹參判)
김익수(金益壽) 호(號) 마암(麻巖) 여주부사(驪州府使)
김견수(金堅壽) 의주병사(義州兵使) 일등공신(一等功臣) 증병조판서(贈兵曹判書)
김말손(金末孫) 병판공파조(兵判公派祖) 자(字)는 백윤(伯胤) 호(號)는 경운(耕雲)이며 려말충신(麗末忠臣) 득우(得雨)의 현손(玄孫)이다 나이 겨우 약관(弱冠)에 붓을 던지고 활 쏘기를 배워 23세에 뽑히어 선전관(宣傳官)이 되었으며 얼마 후 재령군수(載寧郡守)가 되어 정성(政聲)이 높았다. 충청병수사(忠淸兵水使)와 전라병수사(全羅兵水使)를 역임하고 만년(晩年)에 안동부사(安東府使)가 되어 득병(得病)함에 내 어찌 객사(客死)하겠는가 하고 서둘러 조령(鳥嶺)을 넘어 서교구장(西郊舊庄)에 돌아와 머물다가 졸(卒)하시니 후(後)에 병조판서(兵曹判書)에 추증(追贈)되었다.
김덕흥(金德興) 송화현령(松禾縣令)
김복흥(金福興) 파평현령(坡平縣令)
김중련(金仲鍊) 평강현령(平康縣令)
김안복(金安福) 호(號) 용숙(龍淑) 생원(生員) 증병조참의(贈兵曹參議)
김안조(金安祚) 감찰공파조(監察公派祖) 자(字)는 중수(仲綏) 호(號)는 홍파(弘巴)이니 병판공(兵判公) 말손(末孫)의 차남(次男)으로 나이 십이~삼세에 시서대의(詩書大義)에 통달(通達)하고 능문(能文)하여 중종(中宗) 갑술(甲戌) 1514년에 생진시(生進試)에 급제(及第)하여 성균생원(成均生員)이 되고 다음해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에 등탁(登擢)되었으며 통정대부(通政大夫) 공조참의(工曹參議)에 증직(贈職)되었다.
김안우(金安祐) 찬성공파조(贊成公派祖) 자(字)는 계수(季綏) 호(號)는 홍월(弘月)이니 병판공(兵判公) 말손(末孫)의 삼남(三男)으로 중종(中宗) 계해(癸亥)에 음직(蔭職)으로 예빈시별좌(禮賓寺別坐)에 선보(選補)되었으며 특전(特典)에 의해 숭록대부좌찬성(崇祿大夫左贊成)에 추증(追贈)되었다.
김안세(金安世) 수의부의(修義副尉)
김계조(金繼祖) 파평군수(坡平郡守)
김   우(金   瑀) 호(號) 일제(一齊) 사복정(司僕正)
김   수(金   璲) 호(號) 덕곡(德谷) 진사(進士) 우승지(右承旨)
김   기(金   琦) 호(號) 호암(昊巖) 황주목사(黃州牧使)
김   침(金   琛) 호(號) 정덕(正德) 예빈부정(禮賓副正)
김   영(金   瑛) 전설사별좌(典設司別坐) 증이조참의(贈吏曺參議)
김   형(金   珩) 이학행명어세(以學行名於世) 증영의정(贈領議政)
김응수(金應壽) 해주병사(海州兵使)
김만령(金萬齡) 판결사(判決事)
김응성(金應星) 형조판관(刑曹判官)
김유경(金有慶) 호(號) 엄월(奄月) 진사(進士) 증호조참의(贈戶曹參議)
김흥립(金興立) 호(號) 백운(白雲) 형조부정(刑曹副正)
김원경(金元慶) 호(號) 창암(蒼巖) 예빈부정(禮賓副正)
김복경(金復慶) 자(字) 한성판윤(漢城判尹)
김응경(金應慶) 호(號) 금암(錦巖) 장사랑(將仕郎)
김두남(金斗南) 파강공파조(巴江公派祖) 자(字)는 일숙(一叔) 호(號)는 파강(巴江)이니 전설사별좌(典設司別坐) 영(瑛)의 아들로 두암상공(斗巖相公) 응남(應南)의 종제(從弟)이며 성암(省菴) 김효원(金孝元) 선생을 사사하여 종신복응(終身服膺)하였다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으며 호조판서(戶曹判書)에 증직(贈職)되었다.
김응남(金應南) 두암공파조(斗巖公派祖) (字)는 중숙(重叔) 호(號)는 두암(斗巖) 시호(諡號)는 충정(忠靖)이니 1568년(선조.1) 증광문과(增廣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예문관(藝文館) 홍문관(弘文館)에 등용되었으며 1583년 동부승지(同副承旨) 우승지(右承旨)를 지냈다. 그후 좌부승지(左副承旨) 대사헌(大司憲) 대사간(大司諫) 부제학(副提學) 이조참판(吏曹參判) 등을 역임하고 1591년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와 한성판윤(漢城判尹)이 되었다. 이듬해 임진왜란에 병조판서(兵曹判書) 부체찰사(副體察使)로서 평안도로 피난하는 선조(宣祖)를 모셨고 이조판서(吏曹判書)로 왕을 따라 환도(還都) 1594년 우의정(右議政) 1595년 좌의정(左議政)이 되었다. 1597년 정유재란(丁酉再亂)에는 안무사(按撫使)를 지냈고 1604년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으로 원성부원군(原城府院君)에 추봉(追封)되었다.
김기남(金起南) 부사공파조(府使公派祖) 자(字)는 명숙(明叔) 호(號)는 두촌(斗村)이며 원성부원군(原城府院君) 응남(應南)의 아우이다 선조(宣祖) 기묘(己卯)에 음직(蔭職)으로 선공감역(繕工監役)을 지내고 판관(判官)을 거쳐 삼척부사(三陟府使)를 역임하였으며 이조참의(吏曹參議)에 증직(贈職)되었다.
김원조(金元祚) 형조정랑(刑曹正郎)
김문위(金文偉) 병마사(兵馬使)
김영휴(金永休)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
김광복(金光復) 첨사(僉使)
김현룡(金見龍) 이천부사(利川府使)
김명귀(金命貴) 주부(主簿) 증호조참의(贈戶曹參議)
김명직(金命稷) 진사(進士) 호조정랑(戶曹正郎)
김명설(金命卨) 호(號) 휴월(休月) 재령군수(載寧郡守)
김명덕(金命德) 단천군수(端川郡守)
김명복(金命福) 평산부사(平山府使)
김명호(金命虎) 제검(提檢)
김명태(金命態) 광주목사(光州牧使)
김명설(金命說) 호(號) 동촌(東村) 현령(縣令)
김명철(金命哲) 형조부정(刑曹副正)
김명발(金命渤) 충좌사(忠佐司)
김   수(金   脩) 초명(初名) 천룡(天龍) 호(號) 호천(浩川) 현감(縣監) 영사원종공신(寧社原從功臣) 증호조참판(贈戶曹參判)
김준룡(金俊龍) 충양공파조(忠襄公派祖) 자(字)는 수부(秀夫) 시(諡)는 충양(忠襄)이며 1608년 무과(武科)에 급제 1636년(인조.14) 전라도병마절도사(全羅道兵馬節度使)가 되어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자 용인 광교산(光敎山) 전투에서 청(淸)나라 대군을 맞아 청태조(淸太祖)의 사위인 백양고라(白羊古羅) 장군을 포함한 수 많은 적병(敵兵)을 사살함으로써 광교산(光敎山) 대승첩(大勝捷)의 전공(戰功)을 남기고 뒤에 어영중군(御營中軍) 김해도호부사(金海都護府使) 경상도병마절도사(慶尙道兵馬節度使) 등을 역임(歷任)하였다. 지금도 광교산(光敎山) 상봉(上峯)의 암반(巖盤)에는 “충양공김준룡전승지(忠襄公戰勝地) 병자청란공제호남병(丙子淸亂公提湖南兵) 근왕지차살청삼대장(勤王至此殺淸三大將)”이라고 새겨진 암각서(巖刻書)가 경기도 기념물 제38호로 지정(指定)되어 선명하게 보존(保存)되고 있다.
김마룡(金馬龍) 첨지(僉知) 영사공신(寧社功臣)
김명룡(金命龍) 단양군수(丹陽郡守)
김명시(金命時) 호(號) 무송(撫松) 성균진사(成均進士)
김명순(金命舜) 부정(副正) 증호조참의(贈戶曹參議)
김명원(金命元) 호(號) 청봉(淸峰) 성균생원(成均生員)
김계룡(金繼龍) 첨지(僉知) 증호조참판(贈戶曹參判)
김중혁(金重爀) 훈련판관(訓鍊判官)
김계남(金戒男) 홍천군수(洪川郡守)
김대준(金大俊) 부정(副正)
김   기(金   杞) 병조좌랑(兵曹佐郎)
김   빈(金   彬) 통천군수(通川郡守)
김원경(金元慶) 문천현감(文川縣監)
김응추(金膺秋)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김한문(金漢文) 황해병사(黃海兵使)
김홍망(金弘望) 호(號) 수경(壽敬) 부정(副正)
김홍량(金弘亮) 병조정랑(兵曹正郎)
김홍철(金弘哲) 군수(郡守)
김홍억(金弘億) 부평현령(富平縣令)
김홍식(金弘植) 훈도(訓導)
김홍석(金弘奭) 충좌사(忠佐使)
김숭문(金崇文) 진사(進士)
김경문(金敬文) 호(號) 만교(晩橋) 사재감첨정(司宰監僉正) 수직가선(壽職嘉善)
김인문(金仁文) 사복판관(司僕判官) 증영의정(贈領議政)
김현문(金炫文) 호(號) 방촌(傍村) 사마양시(司馬兩試) 응교(應敎)
김진문(金震文) 선략장군(宣略將軍)
김소문(金韶文) 군수(郡守)
김상문(金尙文) 진사(進士) 증이조참판(贈吏曹參判)
김승문(金升文) 진사(進士) 집의(執義)
김윤문(金胤文) 예조정랑(禮曹正郎)
김계현(金繼賢) 황해병사(黃海兵使)
김   원(金   源) 연안현령(延安縣令)
김   도(金   燾) 의주병사(義州兵使)
김태삼(金台三) 노직첨사(老職僉使)
김   석(金   碩)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김   지(金   祗) 유원첨사(柔遠僉使)
김효증(金孝曾) 부정(副正)
김현증(金鉉曾) 호(號) 월룡(月龍) 전의감부정(典醫監副正)
김만증(金萬曾) 호조부도사(戶曹副都事)
김윤증(金允曾) 호(奄天)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김문증(金文曾) 좌익찬(左翼贊)
김백량(金栢樑) 형조정랑(刑曹正郎)
김중해(金重海) 병조좌랑(兵曹佐郎)
김태화(金兌華) 공조참의(工曹參議)
김   확(金   確) 의주부사(義州府使)
김계원(金屆遠) 훈련원부정(訓鍊院副正)
김도원(金道遠) 한성참군(漢城參軍)
김행원(金行遠) 참봉(參奉)
김정원(金正遠) 부호군(副護軍)
김병원(金炳遠) 통례원인의(通禮院引儀)
김시원(金始遠) 호조정랑(戶曹正郎)
김종원(金宗遠) 형조좌랑(刑曹佐郎)
김덕원(金德遠) 휴곡공파조(休谷公派祖) 자(字)는 자장(子長) 호(號)는 휴곡(休谷)이며 판관(判官) 인문(仁文)의 아들로서 효종(孝宗) 5년(1654) 갑오(甲午)에 진사시(進士試)에 들고 현종(顯宗) 3년(1662) 임인(壬寅)에 등과(登科)하여 승문원(承文院) 부정자(副正字)에 보직(補職)되었다 동(同) 7년(1666) 병오(丙午)에 경안찰방(慶安察訪)으로 나아가 가을 문과중시(文科重試)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여 전적(典籍)이 되었다. 그 후 내외직(內外職)을 두루 거쳐 형조(刑曹) 호조(戶曹) 예조판서(禮曹判書) 등을 역임하고 숙종(肅宗) 15년(1689) 기사(己巳)에 벼슬이 우의정(右議政)에 이르렀고 1691년 신미(辛未)에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가 되었다. 1694년 갑술옥사(甲戌獄事)에 연루(連累)되어 제주도로 유배(流配) 당하였다가 4년만에 해남(海南)으로 옮겨 풀려났다.
김홍원(金弘遠) 좌승지(左承旨)
김   근(金   釿) 원종공신(原從功臣)
김   희(金   熹) 일휘(一諱) 몽수(夢壽) 충좌랑(忠佐郞)
김   중(金   重) 양천현감(陽川縣監)
김   방(金   埅) 좌승지(左承旨)
김몽위(金夢渭) 진사(進士) 좌랑(佐郞)
김몽천(金夢天) 부정(副正)
김몽익(金夢翼) 호(號) 아천(牙天) 흥해군수(興海郡守)
김몽형(金夢衡) 호(號) 용춘(龍春) 칠곡부사(漆谷府使)
김몽한(金夢翰) 예조정랑(禮曹正郎)
김몽인(金夢仁) 호(號) 월촌(月村) 영흥교수(永興敎授)
김몽전(金夢傳) 병사(兵使)
김몽권(金夢權) 충위군(忠衛軍)
김몽린(金夢麟) 제검(提檢
김몽철(金夢哲) 호(號) 숙전(淑田) 문교리(文校理)
김몽필(金夢弼) 호(號) 두곡(斗谷) 안주현감(安州縣監)
김몽뢰(金夢賚) 호(號) 월림(月林) 부평현감(富平縣監)
김몽업(金夢業) 훈련판관(訓鍊判官)
김몽도(金夢道) 호조정랑(戶曹正郎)
김몽강(金夢剛) 부정(副正)
김몽갑(金夢甲) 사복첨정(司僕僉正)
김몽득(金夢得) 호(號) 강암(江岩) 당진현감(唐津縣監)
김몽길(金夢吉) 통덕랑(通德郞)
김몽좌(金夢佐) 군수(郡守)
김몽협(金夢協) 함흥판관(咸興判官)
김몽양(金夢陽) 대사간(大司諫)
김몽서(金夢瑞) 안주목사(安州牧使)
김몽지(金夢摯) 성균교리(成均校理)
김몽화(金夢華) 승사랑(承仕郎)
김몽호(金夢浩) 진사(進士) 승사랑(承仕郎)
김몽즙(金夢楫) 부정(副正)
김몽뢰(金夢賚) 생원(生員) 부정(副正)
김몽의(金夢儀) 승시랑(承仕郎)
김몽린(金夢麟) 진사(進士) 통덕랑(通德郞)
김몽후(金夢厚) 우승랑(右丞郞)
김몽호(金夢虎) 호(號) 삼불감(三不感) 부정(副正)
김몽표(金夢豹) 호군장군(護軍將軍)
김이윤(金履潤) 예조부정(禮曹副正)
김위윤(金胃潤) 고부군수(古阜郡守)
김제윤(金濟潤) 호(號) 파남(巴南) 진사(進士)
김항윤(金恒潤) 별제(別提)
김신윤(金身潤) 무과(武科)
김상윤(金相潤) 호조정랑(戶曹正郎)
김태윤(金兌潤) 황주목사(黃州牧使)
김종윤(金鍾潤) 승사랑(承仕郎)
김영주(金英柱) 진사(進士) 부정(副正)
김종윤(金琮潤) 옥과현령(玉果縣令)
김검윤(金儉潤) 현령(縣令)
김언윤(金彦潤) 동지부사(同知府事)
김환윤(金桓潤) 첨정(僉正)
김중윤(金重潤) 참의(參議)
김정윤(金廷潤) 도승지(都承旨)
김조윤(金朝潤) 호(號) 채암(蔡庵) 한성판윤(漢城判尹)
김만윤(金萬潤)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김도윤(金道潤) 병사(兵使)
김화윤(金華潤) 오위장군(五衛將軍)
김태윤(金台潤) 동지교관(同知敎官)
김숭제(金嵩濟) 호(號) 인독재(忍獨齋) 증동몽교관(贈童蒙敎官)
김진충(金進忠) 돈영부도사(敦寧府都事)
김흥만(金興萬) 동지부사(同知府事)
김   냉(金   冷) 동지사관(同知史官)
김수윤(金受潤) 안산군수(安山郡守)
김수정(金壽鼎) 단성군수(丹城郡守) 증병조참판(贈兵曹參判)
김태정(金台鼎) 예조참의(禮曹參議)
김중섭(金重燮) 양덕현감(陽德縣監)
김홍윤(金弘潤) 병조좌랑(兵曹佐郎)
김한철(金漢哲) 이조좌랑(吏曹佐郎)
김연옥(金鍊玉) 칠곡현령(漆谷縣令)
김성빈(金聖彬) 훈련원부정(訓鍊院副正)
김성적(金聖積) 병조좌랑(兵曹佐郎)
김성영(金聖榮) 병마사(兵馬使)
김성여(金聖麗) 해주판관(海州判官)
김수완(金壽完) 상주현령(尙州縣令)
김성간(金聖簡) 호(號) 관재(觀齋) 동몽교관(童蒙敎官)
김성즙(金聖楫)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김성집(金成集) 황주진관선적첨사(黃州鎭管善積僉使)
김성업(金成業) 부호군(副護軍)/td>
김성린(金聖麟) 중시(重試) 첨사(僉使)
김   준(金   遵) 현령(縣令)
김성유(金聖柔) 무도사(武都事)
김연완(金延琬) 군수(郡守)
김연취(金延就) 동지부사(同知府使)
김약눌(金若訥)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
김경눌(金景訥) 병마사(兵馬使)
김희눌(金禧訥)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김영눌(金永訥) 호(號) 송헌(松軒)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
김호명(金昊明) 죽산군수(竹山郡守)
김광진(金光鎭) 우승지(右承旨)
김성준(金聖俊) 평산군수(平山郡守)
김복광(金復光) 호(號) 삼종재(三種齋) 통천군수(通川郡守)
김진광(金振光) 재령군수(載寧郡守)
김진광(金診光) 형조좌랑(刑曹佐郎)
김우광(金禹光) 호(號) 상산(商山) 동지부사(同知府使)
김계광(金啟光) 호(號) 청봉(晴峰)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
김국광(金國光) 문도사(文都事)
김정광(金鼎光) 교관(敎官)
김인광(金仁光) 도사(都事)
김순광(金舜光) 동몽교관(童蒙敎官)
김용광(金用光)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김대광(金大光) 동지문도사(同知文都事)
김우출(金遇出) 부정(副正)
김달중(金達仲) 병마사(兵馬使)
김달형(金達亨) 호(號) 성암(醒巖) 현령(縣令)
김우원(金遇元) 노직첨지(老職僉知)
김우형(金遇亨) 금부도사(禁府都事)
김달홍(金達洪) 호조참판(戶曹參判)
김우명(金遇明) 호(號) 만화당(晩華堂) 대사헌(大司憲)
김우형(金遇亨) 진사(進士) 도사(都事)
김시춘(金時春) 호(號) 빈정(彬汀)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김시명(金時命) 부정(副正)
김덕록(金德祿) 현령(縣令)
김봉집(金鳳集) 충훈부도사(忠勳府都事)
김백영(金伯英)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김제연(金濟演) 노직도정(老職都正)
김동일(金東一) 호(號) 덕포(悳圃) 진사(進士)
김성현(金聖鉉) 호(號) 청은(淸隱)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김연희(金淵禧) 호(號) 죽오(竹五)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